평화로운 대화를 위해 느낌의 언어를 쓰자

느낌을 나타내는 말(일부)

교회에서 소그룹 리더들을 위한 평화로운 대화에 관한 특강이 있었다. 이른바 리더를 위한 교육에는 이런 저런 계기로 제법 여러 번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이런 교육이나 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대화에 관한 것을 요약하면 경청공감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정성스럽게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라는 것.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듣는 자세부터 적극적으로 취하고 말하는 이에게 눈을 맞추며 되풀이 법 등을 사용하며 적절한 반응을 보이고, You 메시지가 아닌 I 메시지를 쓰라는 등의 실용적인 지침도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손성현 목사님께서 진행한 이번 강의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할 때 판단, 평가 등의 생각의 표현을 쓰기보다는 느낌을 나타내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느낌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으니 표현도 ‘감동받다’, ‘고맙다’, ‘즐겁다’, ‘사랑하다’처럼 긍정적인 표현과 ‘걱정되다’, ‘무섭다’, ‘불편하다’, ‘서운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이 있다. 강의에서는 긍정적 표현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고 부정적 표현은 반대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의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소중한 지침이다. 설사 옳은 말이라고 해도 도덕주의적인 판단과 평가, 강요, 비교, 책임 회피, 공감 없는 충고와 조언 따위는 갈등, 나아가 폭력을 조장한다. 영혼 없는 말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던가.

이 강의가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속한 일터에서 하는 일인 감성 분석에서 다루는 감성어가 바로 강의에서 말하는 느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감성 분석을 간단히 설명하면 소셜 미디어 등의 인터넷 매체에 쓰인 사람들을 글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하여 사람들의 감성을 유추하는 기술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이 적절한 감성어 목록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감성어 목록을 다루는 일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업무이다. 업무상 늘 보던 단어들을 평화로운 대화를 위한 강의에서 만나니 느낌이 묘했다.

나는 연구자이며 기술자이다. 그러므로 나는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는 글쓰기와 말하기에 익숙하다. 불이익을 당하여 항의를 할 때에도 화를 내기보다는 상대방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담론을 만들어서 굴복시키는 것이 나의 대화법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나의 능력을 남몰래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나의 공식적인 주요 활동 영역인 논문, 매뉴얼, 강연, 발표 등에서는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영역들이 정말 상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대화인가?

친밀하고도 비공식적이며 상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그리 좋은 대화 참여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나는 좀처럼 느낌을 나타내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아내는 느낌을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으면서도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는 데에 능숙하여 많은 이들의 상담자가 되어 준다. 아내는 그런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다.

삶의 대부분은 논문, 매뉴얼, 강연, 발표가 아닌 비공식적인 상황으로 구성된다. 나의 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